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미 타카노리 (문단 편집) === [[Pride]] === 다소 부진한 2003년을 보낸 고미는 2004년 PRIDE의 경량급 리그격인 무사도로 돌아왔다. 2004년 2월 PRIDE 무사도 2에 출전한 고미는 재디슨 코스타를 1라운드에 펀치로 TO시키며 화려하게 PRIDE 무대에 입성, 2004년 5월 무사도 3에서는 하우프 그레이시를 불과 6초만에 니킥으로 실신시키며 KO승을 거둔다. 이 경기는 부상으로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기권한 [[마크 콜먼]] vs [[후지타 카즈유키]]의 경기를 제외하곤 프라이드 최단 KO기록이다.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gomikoralphgracie-xorud1234.gif|width=500]] 이후에도 연승행진을 이어가 파비오 멜로를 역시 펀치로 쓰러뜨렸고, 꼴통인 [[찰스 베넷]]을 기무라로 정리하며 PRIDE 라이트급의 강자로 부상했다. 2004년 12월의 남제에서는 [[UFC]] 초대 라이트급 챔피언인 [[젠스 펄버]]와 대결해 1라운드 펄버의 턱에 라이트를 작렬시키며 충격적인 KO승을 거두었다. 이는 두 선수간의 체급차를 생각하더라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때 고미는 '나에게 판정이란 없다. 나의 시합은 모두 KO, 그것도 1라운드 KO 뿐이다.'라고 선언했다. 2005년 5월 무사도 7에서 [[루이스 아제레도]]와 대결하여 아제레도의 치고 빠지는 전략에 고전했지만 코너로 몬 뒤 원투 펀치로 실신 KO 승을 거뒀다. 레프리가 스탑을 선언하고 제지하는 도중에도 KO된 아제레도에게 계속 파운딩을 치는 바람에, 두고두고 까이는 원인이 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부정적인 여론과 함께 거만하기 짝이 없는 승리 포즈를 싫어하던 사람들이 추가되어 안티가 엄청나게 급증했다. 이유도 가관이었는데 나는 엄청 많이 얻어맞았는데 저놈은 한방에 쓰러지길래 화가 나서였다고 한다.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9zvkow.gif|width=500]] 7월에는 진 실바를 판정으로 잡아냈다.[* PRIDE 진출 후 6경기만에 처음으로 나온 판정승이었다. 경기 종료 직전 암바를 걸었으나 실바가 필사적으로 버티는 바람에 마무리는 짓지 못했다. ] 2005년 9월에는 PRIDE 라이트급 그랑프리에 8강에서 [[카와지리 타츠야]]를 상대했다. 카와지리는 고미와 더불어 일본 라이트급 양대산맥으로 꼽힐 정도의 강자였기에 이 경기는 라이트급의 [[크로캅]] vs [[효도르]]로 불릴 정도의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타격전에서 고미의 일방적인 관광이 이어졌고 뒤이어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4강에서 다시 만난 루이스 아제레도를 판정으로 이기며[* 다만 고미가 그린 카드를 2개나 받을 정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서 잡음이 약간 있었다. ] 결승에 진출, [[사쿠라이 하야토]]와 초대 PRIDE 라이트급 타이틀을 걸고 격돌했다. 초반 타격전에서는 하야토의 카운터에 고전했지만 하야토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방어하며 오히려 백마운트를 잡고 파운딩을 퍼부어 대미지를 누적시켰다. 그리고 이어진 스탠딩 상황에서 원투를 깨끗하게 명중시키며 PRIDE 라이트급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게 된다.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5EC%25A0%259C%25EB%25AA%25A9%2520%25EC%2597%2586%25EC%259D%258C.jpg|width=500]] 하지만 2006년 4월 무사도 10에서 뜻하지 않은 패배를 당했다. [[마커스 아우렐리오]]에게 더블렉을 잡힌 끝에 암트라이앵글에 끝까지 탭을 치지 않아 실신 서브미션패를 당한 것이다. 논 타이틀 매치였기에 벨트는 빼앗기지 않았으나 너무나도 허망한 고미의 패배는 팬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패배 원인에 대해 '''모티베이션 저하'''라는 변명을 했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정상에 이제 막 등극한 선수가 BJ펜이나 요아킴 한센 등 리벤지할 상대들도 남아있는데 벌써부터 그런 모습을 보이냐는게 중론이었다.[* 덧붙여서 마커스는 이 경기를 계기로 국내 기사 한정으로 한동안 '''고미잡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결국 아우렐리오와 2006년 5월 무사도 13에서 라이트급 벨트를 걸고 다시 격돌했는데, 여기서는 스플릿 판정승을 거뒀다.[[https://www.ringside.co.kr/m/board.html?code=ringside_board6&page=1&type=v&board_cate=&num1=999915&num2=00000&number=84&lock=N|#]] 다만 둘 다 적극적인 공방을 피하고 소극적인 경기를 보였기 때문에 입방아에 오르게 되었다.[* 판정의 경우 한국에서는 어쨌든 [[테이크다운]]을 2차례 뺏은 마커스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다는 의견이 더 많았지만, 일본에서는 링 중앙을 점유하고 이노키 알리 포지션에서 로우킥을 여러 차례 날린 고미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2006년 12월 31일 PRIDE 남제 2006에서 [[마커스 아우렐리오]]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강력한 레슬러 이시다 미츠히로를 맞아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시다의 하이킥에 카운터 펀치로 다운을 뺏은 후 파운딩으로 1분 11초만에 KO시키며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2007년 2월 PRIDE 33에서는 [[닉 디아즈]]와 대결했는데, 1라운드에 큰 다운을 빼앗아 디아즈가 안와골절을 당하여 2라운드에 닥터 체크만 2번 받으며 승리를 얻는가 했더니, 디아즈의 타격에 밀려 가드도 못 올릴 정도[* 일부 팬들은 디아즈가 안 들어오니 노가드로 도발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고미 본인이 인터뷰에서 가드 올릴 힘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로 데미지를 받으며 고전한 끝에 디아즈를 테이크 다운시켰지만 고고플라타에 걸리면서 역전 서브미션 패를 당한다. 디아즈가 감량해온 경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좋지 않은 결과였지만, 경기 후 디아즈가 마리화나를 복용한 사실이 적발되어 경기는 무효처리된다. 이후 PRIDE가 도산하면서 이 경기는 고미의 마지막 PRIDE 경기가 되었다.[* 원래 계약상 마지막 경기였다고 한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